흑연이 고온 견디면 다이아몬드 … 언어 학습도 '응축의 시간' 필요

교육자로서 제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쓰는 연필심(흑연)과 다이아몬드 이야기인데요. 흑연과 다이아몬드 모두 탄소(C)로 이뤄진 동소체지만, 탄소 원자의 배열(결합 방식)이 달라지면서 어떤 것은 흑연이 되고 어떤 것은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높이 올라가려는 제자들에게는 '지금 시련(높은 압력)을 잘 견뎌내면 너는 다이아몬드가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고요. 많이 지친 제자들에게는 '잠시 쉬어가도 돼. 지금은 연필심 만들고, 다음에 다이아몬드 만들면 되지'라고 해줍니다.

부모님들께는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흔하디흔한 흑연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면 충분한 시간과 압력을 견뎌야 한다고 말이죠. 20년 넘게 강남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언어 학습은 직선적 축적이 아니라 '응축의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수학이나 과학이 계단을 오르듯 단계를 밟아간다면, 영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에너지가 모이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돌파하면서 도약합니다. 수학이나 과학 잘하는 사람 옆에 있는다고 해서 내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영어는 잘하는 사람 옆에서 계속 듣다 보면 조금이라도 유창해진다고 설명하기도 하죠.

 

초기 단계의 아이들은 더디고 불안해 보입니다. 단어를 외워도 문장이 읽히지 않고, 문장을 읽어도 의미가 또렷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학부모는 계속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고, 아이는 자신감을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가 축적과 응축의 구간입니다. '실패한 시간'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발음과 어휘, 문장 구조에 대한 감각이 서서히 쌓이며 내면의 중심으로 모입니다. 겉으로는 정체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조용한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변화가 시작됩니다. 단어를 하나씩 해석하던 아이가 문장을 덩어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전까지는 단어를 하나하나 해석해야 했던 데서 벗어나 문장 전체가 이미지처럼 밀려 들어옵니다. 들리지 않던 영어가 또렷이 들리고, 읽히지 않던 문장이 구조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은 자석처럼 연결돼 문장으로 터져 나옵니다. 흩어져 있던 문법은 제자리를 찾고, 막막하기만 하던 시험지 지문은 한눈에 조망됩니다. 저는 이 순간을 '학습의 임계점'이라 부릅니다.

농축이 충분히 이뤄져야 임계점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에서 농축을 '중심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산만하게 흩어진 어휘와 경험이 하나의 구조로 묶이고 문장이 사고의 도구로 자리 잡는 순간, 아이 안에는 비로소 핵이 형성됩니다. 농축은 '속도를 늦추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충분히 읽고, 충분히 듣고, 충분히 사유하는 시간 속에서 중심은 단단해집니다. 겉으로 빠른 성취를 보이지 않아도 내부에서 응집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이란 전쟁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요즘 '뉴클리어(nuclear)'라는 단어를 생각해봅니다. 라틴어 'nucleus'에서 비롯된 이 단어는 '작은 씨앗' '중심'을 뜻합니다. 거대한 에너지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중심에서 시작됩니다. 파괴와 창조의 갈림길은 그 중심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육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 안에는 이미 언어의 씨앗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급히 폭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이 단단히 농축되도록 기다리고 지지하는 일입니다. 영어 교육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아이 안의 '핵'을 얼마나 깊고 단단하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정민 W어학원 대표]